유니언타운
[집착] 휴식을 취하는 자리
2020. 12. 09(수요일)
집(home)착: 집에 바싹 다가붙거나 끈기 있게 달라붙는 모양.
‘좋은 곳에 가면 꼭 누워봐야 안다.’
건축공이셨던 할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지은 건물이 완공되면 나를 자주 데리고 가셔서는 항상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낭랑했던 어린이는 그 말 뜻이 어찌됐든 그저 나무냄새, 흙냄새, 풀 냄새가 섞인 새 집에 드러눕는 것이 마냥 좋았다.
현재 성인이 된 나는 좋은 곳에 가면 어디든 누워보는 것 그 자체를 여전히 좋아하고, 그 때는 이해하지 못한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 할 수 있게 됐다.
아마도 그때의 그는 내가 자라서 스스로 이 작고 가여운 몸을 뉘여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아낼 수 있기를,
또 그 곳에서 언제나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기를 바라셨기에 강조하고 또 강조했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언제나 좋은 휴식 방법을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휴식을 잘 취하는 사람이 되는 것.’
휴식을 잘 취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동시대의 우리들은 자본주의 아래에서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달리고, 퇴근 후 휴식을 취해야 할 집에서는 다음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또 그렇게 흘러버린 낮시간을 안타까워하며 보상하듯 모바일 세계에 기꺼이 뛰어든다.
이렇듯 많은 현대인들이 매일 온전한 휴식에 실패하게 되는 부조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그런 악순환에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같은 경우 <피로한 인간>되기를 반항하기 위해 퇴근 후 낡은 몸뚱아리의 허물을 한 겹 벗은 후,
잘 걸어두고 ‘거실의 소파’에 몸을 한번 뉘여준다. (휴대폰도 허물과 함께 내려둔다.)
제 아무리 좋은 동료들과 일한다 해도 몸은 항상 긴장한 상태이기에 한차례 진정 시켜준다.
잠들지 않게 유의하며 휴식을 취하고 수차례 기지개를 켠 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
과일이나 간식, 물을 섭취 한 후 가벼운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시 서재방의 ‘책상 의자’에 잠깐 앉아 빙그르르 돌면서 하루 일과를 집사람(동거인),
반려견에게 공유하며 나의 하루치 기억을 한번 훑어본다.
혼자 머리 속으로 고민하는 것들이 쌓이다보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긴장이 풀리지 않고 불안감과 피로감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언제나 쉽게 방출하고 빠르게 잊는다.
마지막으로 소소한 대화를 마무리 짓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 후, 잠자리에 눕는다.
여기까지가 나의 퇴근 후 휴식을 위한 루틴이다.
이 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인 ‘잠자리’ 부분은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됐다.
톡톡한 소재의 폭신한 새파란 침구, 침대 위 여기저기 널부러진 다양한 베개, 풀내음이 잘드는 창,
아늑한 크기의 룸사이즈 등 더 좋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촉감, 청각, 시각, 후각의 환상적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완전한 휴식을 위한 루틴은 생각보다 귀찮을 수도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라고 물어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우리는 분명 손 안의 작은 세상에 빠져서 소중한 시간을 너무 쉽게 소비해버리게 된다.
나는 현재 유니언플레이스에서 디자인기획팀에 소속되어 그 안타까운 소비를 방해하기 위해 조용히 고군분투 중이다.
‘누워봐야하는 좋은 곳’의 형태를 새로 오픈 할 쉐어하우스 '업플로하우스'에 구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 하고 있으며
초속의 시대에 피곤해하고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꾸린 어떠한 ‘자리’에서 완전한 휴식의 방법을 찾아내고 실행하며,
그 곳에서 내일 다시 걸어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어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휴식을,
안녕을 공유하면 조금 더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당신만의 ‘자리’는 지금 어떠한가?
나는 그 어떤 곳이든 당신이 언제나 평온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